[항구/선착장]
섬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때로, 성주 배씨가 이곳을 지나다가 해초류가 많아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겠다 싶어 들어와 정착했다고 전해진다.
그 후 안동 장씨가 들어와 살기 시작했으며, 입향 시조인 성주 배씨의 묘가 현재 시루섬에 한 기 있지만 성주 배씨의 후손은 한 가구도 살고 있지 않으며, 현재 섬에는 안동 장씨가 많다.
바다 한가운데 모래로 쌓은 섬 같다 하여 모래 사 자와 호수 호자를 써서 사호도라고 불렸으며, 일제 강점기 이후 사도로 불리기 시작했다.
주소 : 전남 여수시 화정면 낭도리 사도
[한국의 역사 등대]
오동도 등대는 정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1952년 5월에 처음 불을 밝혔으며, 구 등탑은 높이 8.4m의 백원형 철근콘크리트구조물이었으나 2002년에 27m의 8각형 철근콘크리트 구조물로 개축하였다. 내부는 8층 높이의 나선형 계단구조를 갖추고 있다.
오동도등대에 오르는 길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무성한 동백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는데 11월경에 빨간 꽃망울을 터뜨려 겨우내 황홀함을 뽐내다 3월경에 절정을 이룬다.
최초 점등일 : 1952년 5월 12일
주소 : 전남 여수시 수정동 산1-7
[항구/선착장]
추도 마을은 언제부터 섬에 사람이 살았는지는 확실히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약 1800년대에 전주 이씨와 함안 조씨가 입도하여 살았다고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사도마을에서 약1km쯤 떨어진 개이도라는 곳에 있는 작은 섬마을로 주민들이 취나물이 많이 자라는 섬이라고 하여 추도라고 불렀다고 한다.
난중일기에 적의 진지를 살피기에 유리한 섬이라 하여 개이도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기는 하나 언제부터 사람들이 들어가 살았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주소 : 전남 여수시 화정면 낭도리 추도
[항구/선착장]
여수시에 있는 섬으로 멀리서 보면 섬의 모양이 오동잎처럼 보이고, 예전부터 오동나무가 유난히 많아 오동도라 불리게 되었다.
임진왜란 때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 최초로 수군 연병장을 만들었고 이곳의 조릿대의 이대로 화살을 만들어 왜군을 크게 무찔렀다고 한다.
1933년에 길이 768m의 서방파제가 준공되어 육지와 연결되었고, 1968년에는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현재는 요트 정박지로 사용되고 있다.
주소 : 전남 여수시 수정동 산 1-11
[후기로 보는 시간여행]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고,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아마도 목포하면 아는 사람은 가보지 않아도 이 노래부터 흥얼거릴 것이다.
갸냘픈 전통 트롯인 이난영의 목소리에 실린 가사때문인지 더욱 서정적인 맛을 먼저 떠올리는 반면에 주먹 세계가 으레 연상되는 것은 아마도 항구 도시가 가지는 특성이 아닐까.
무안반도 끝자락에 위치하여 유달산에 오르면 무안반도에 둘러쌓인 바다가 모두 보이고 도시를 보다 보면 포근한 생각마저 드는 곳이 목포다. 1897년에 개항된 이래 일제 강점기를 통해 식민지 거점 도시로 이용되면서 급속히 성장, 오늘과 같은 틀을 이루었다.
[후기로 보는 시간여행]
얼마전 목포가 대한민국 4대 관광도시 선정되면서 많은 관광객이 목포를 찾게 되면서 도시가 변화를 하기 시작하여 가는 곳마다 스토리를 입혀 아름다운 도시로 바뀌도 있다.
근대화를 소재로 구도심과 문학과 예술이 넘치는 하당권으로 이분화 되면서 주제를 안고 있는 관광도시로 자리 잡았다.
유달산과 목포항을 중심으로 구도심의 근대화의 시간 여행과 박물관, 예술 그리고 축제가 기다리는 신도심 하당권으로 여행을 하다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도시가 되었다.
[후기로 보는 시간여행]
목포 유달산 벚꽃 축제에 방문을 하게 되면 유달산 입구인 노적봉 앞에서 벚꽃지는 날 방문하여 늙은 연주가의 어코디언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이 연주를 듣게 되면 매년 그 소리에 반하여 발길을 목포로 돌리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바로 목포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목포의 눈물과 목포는 항구다를 유달산 그것도 제목에 나오는 도시에서 듣게 되면 꿈조차 엉쿨어지게 되어 시간 여행 하는 맛을 피부로 알게 되는 도시가 바로 목포이다.
[후기로 보는 시간여행]
목포의 눈물은 1935년에 발표된 노래로 민요풍의 가락과 구슬픈 곡조가 잘 살아있어 대전블루스와 함께 목포를 대표하는 노래이자 호남지방을 대표하는 노래로 회자되고 있다.
매년 목포에서는 이난영 가요제가 열리고 있어 차세대 트롯 가수를 꿈꾸는 신인들에게 등용문의 가요제로 자리를 잡았다.
나라 잃은 한을 말하는 노래로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하고자 삼백년 원한 품은을 삼백련 원앙풍으로 바꿔 불러서 그들의 눈과 귀를 피한 일화는 전설처럼 녹아 있는 노래이다.
[마을/학교(폐교) 시간여행]
추도 분교는 25년 전에 학생수 감소로 폐교되어 지금은 거의 형태만 남아 있고 폐허를 연상할 정도로 무너져가고 있다.
한때는 추도 스테이를 운영했던 여자분이 추도 사랑에 빠져 그나마 가꾸고 지킴이를 해주어 지금의 모습에 이르고 있지만 다시 사도로 나간 후 몇년전에 1분이 다시 들어와 살게 되면서 무인도를 면한 셈이다.
이 작은 섬에 학교 분교가 있을 정도로 섬마을 사람들의 교육열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섬의 분교였다.
주소 : 전남 여수시 낭도리 추도
[후기로 보는 시간여행]
흔히들 목포하면 항구와 눈물을 먼저 떠 올리게 되는 것은 아마도 근대화 노래 중에 유명한 이난영의 목포는 항구다와 목포의 눈물이라는 노래 때문이지 싶다.
호남선 종착역인 목포역에 내려서 호남선 종착역을 알리는 기념비를 보고 근대화 거리에서 이순신 장군의 전설이 담긴 유달산 노적봉을 시작으로 둘래길을 걷다 보면 항구에는 동의 하나 눈물에는 동의할 수 없음을 알게 되는 도시가 목포이다.
목포는 맛의 도시이기에 가는 곳마다 맛집이기에 맛집의 의미가 없고 근대화 거리에서 역사를 보게 되면 왜 목포가 눈물의 도시였는지를 아 하는 탄성과 함께 고개가 끄덕여진다.
[마을/학교(폐교) 시간여행]
1996년에 학생수 감소로 폐교 되어 지금 전남대학교 소유로 되어 관리되고 있지만 관리가 되지않아 비어진 학교로 남아 있다.
아름다운 섬 사도에 학교까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나라의 교육열을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만 그보다 작은 가구수가 사는 추도에도 분교가 있었음을 알게되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지금은 낭도 학교에 통합되어 운영되고 있지만 학교 시설을 보면 아이들의 재잘거리던 소리가 들릴 것 같은 학교이다.
주소 : 전남 여수시 화정면 사도길 18-1
[유인도서]
추도는 여수 화양반도 앞바다에 떠 있는 화정면에서 작은섬이자 여자만의 입구이고 가막만의 변두리쯤 되는 곳이며 아무도 찾지 않는 외로운 낙도이다.
추도 마을은 언제부터 이 섬에 사람이 살았는지 확실히 알려지지 않지만 200년 전 전주 이씨와 함안 조씨가 입도하여 살았다고 전하고 있다.
섬 이름이 한자로 미꾸라지 추(鰍) 자인데 화정면 관내에서 아주 작은 섬이라 고기 중에서 작은 미꾸라지에 비유하여 ‘추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주소 : 전남 여수시 화정면 낭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