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따라 걷는 시간여행]
여자도를 지나 데크 길을 걷다 보니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간다. 때이른 모기가 보이고 차가운 바람은 해가 구름속으로 숨들어갈때쯤 주변의 모든 것에는 서정이 내린다.
그래서인지 섬의 정기는 한층 차가워지면서 아침 내내 하늘에서 받은 빛과 기운을 숙성시켜 더욱 깊은 서정으로 바꿔 놓고 섬을 가르는 몸에 끼얹어 주는 듯한 시간이 내린다.
조금전 지나간 소나기는 무더웠던 오늘 하루도 쉽지 않은 시간을 잘 보냈구나 하고 위안하면서 나에게 치는 박수일지도 모르겠다.
[길 따라 걷는 시간여행]
쓸쓸한 뒷면에 기대어 이별을 치른 것처럼 누가 보면 딱하고 야윈 사람, 내가 하는 모든 것이 그랬다고 표현한 이채민 시인의 글에 보면 끝자락에 내가 하는 모든 것이 그랬다고 자조하는 듯한 표현의 문장이 나온다.
이처럼 걷다 보면 모든 것을 내려 놓는 듯한 순간이 문득 찾아오게 되는데 아마도 이 순간이 걷기 경지에 이르는 순간인 듯 하다.
체력이 다하고 더위에 지칠 때 멀리 보이는 수평선이 모든 것을 내려놓게 만드는데 편하게 쉬어야 하는 순간에 모든 것을 가볍게 내려 놓게 되는 것이 삶의 아이러니인 듯 하다.
주소 : 전남 여수시 소라면 여자도
[길 따라 걷는 시간여행]
세연정에 도착하여 잠시 쉼을 가지고 돌아보는데
아쉽게도 세연정이 문을 닫아 잠겨 있어
학교를 통하여 세연정으로 잠시 들어가 보았다.
대학시절 답사로 와본 뒤 다시온 것이니 세월로 따지자면 거의 30년만에 이곳에 다시온 셈이다.
조금씩 세연정 모습이 보이는데 오래전에 헤어진 친구를 보는 듯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주변 환경만 정비하느라 바뀐 듯 하고 그 외에는 모든 것이 제자리인데 나만 나이 들어서 이곳에 선 듯 한 느낌이 든다.
[길 따라 걷는 시간여행]
압개예 안개 것고 뒫뫼희 비췬다, 밤믈은 거의 디고 낟믈이 미러 온다, 강촌 온갓 고지 먼 빗치 더욱 됴타. 윤선도의 어부사시사 중 봄노래 일부인데 이 시조는 윤선도가 1651년 벼슬을 버리고 보길도의 부용동에 들어가 나날을 보내면서 지은 연시조이다.
봄부터 사계절을 노래한 어부사시사는 40수로 되어있고, 윤선도가 시조의 형식에 여음만 넣어 완성한 것이다. 이현보의 어부사에서 시상을 얻었다 하나, 요즘말로 표현하면 편곡 정도라 할 수 있다.
우리말로 전혀 새로운 자신의 언어를 능란하게 구사하여 속계를 벗어나 자연에 합치한 어부의 생활을 아름답게 나타내었다. 이런 장소인 보길도는 그래서 걷기만 해도 시인이 되는 곳이다.
[길 따라 걷는 시간여행]
천년송과 방파제 등대를 돌아보고 얼마전 무인 등대가 된 말도 등대로 향한다. 말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 하고 있어 조금 힘은 들지만 얼마전 이달의 등대에 선정된 등대인지라 호기심이 난다.
모든 학문은 호기심에서 시작한다고 했듯이 여행 역시 이 호기심이 발동하면 몸이 절로 반응하고 육신의 힘듦은 배로 들지만 그래도 즐겁다.
새로움을 본다는 것, 이것 하나만으로도 즐겁기 때문이다.
[길 따라 걷는 시간여행]
멀리 보이던 말도 선착장이 5분도 안되어 가깝게 보인다. 선작장에 내려 오른쪽 습곡 형태의 기암이 눈에 들어오는데 한참을 바라다 보며 감탄사를 절로 내뱉는다.
이렇게 말도는 선착장에서부터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다. 습곡은 오후배로 나가기전에 둘러보기로 하고 좌측 해안도로를 걷는데 절벽 역시 습곡 형태로 되어 있어 아름다운 길이다.
코너를 돌기까지는 안쪽에 숨어 있는 내항이 보이지 않기에 순간적으로 펼쳐지는 항구와 멀리 보이는 바위산이 마치 성산포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후기로 보는 시간여행]
오랫만에 내륙을 걷다가 노을이 들무렵 함안 고분군을 걸었다. 다른 도시와는 달리 고대 왕들의 무덤이 있어서 그런지 외국의 왕릉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비장함이 스며들 듯 하고, 고대 무덤이 인상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멀리서 보는 느낌은 가까운 곳에 반하여 또다른 매력이 있는 듯 하다. 잠시 소나기가 지나 가더니 하늘에 붉은 노을이 들기 시작하고 파란색은 감추어졌지만 태양이 고분에 걸려 내가 서 있는 곳에 운치를 더해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다.
함안은 어디를 걷던 고분이 주는 이미지가 강하여 역사를 되돌려 보는 버릇이 생기게 해 주었다.
[길 따라 걷는 시간여행]
무안 하면 맨먼저 떠오르는 것은
세발낚지와 갯벌일 것이다.
갯벌은 세계자연문화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우리에게 귀한 자원이자 어민들의 삶의 터전이니
더욱 소중할 수밖에 없다.
그런 무안을 이번에 새롭게 정비된 노을길을
터벅터벅 말없이 걸어 보았다.
무안에 가면 썰물에는 언제든 갯벌을 볼 수 있고
아직은 여러 바닷가를 걷는 동안
개발이 덜 되어 과거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기에
따뜻함이 남아 있어 즐거움을 배로 얻었다.
[길 따라 걷는 시간여행]
유럽은 이 시기에 내리는 안개는 공해이지만
우리의 안개는 마음에 서정을 더하는 소재가 된다.
오늘 같은 날은 소피아 톤이나 흑백의 질감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오는데 트래킹을 하다가 갑자기 내린 안개는 우연찮게 만나는 귀한 소재가 되는데 이런 우연이 주는 기쁨은 걸어야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내 인생의 풍경 사진 목록에 넣을 가슴 벅찬 풍경 중 하나를 만나게 된다.
[길 따라 걷는 시간여행]
탄도는 전남 무안군에속한 2개의 유인도 가운데 1개인 섬이지만 섬 전체를 돌아도 2시간이면 충분한 곳이긴 하지만 편의 시설이 없어 육지에서 미리 준비해야하는 불편한 섬임에는 틀림없다.
얼마 전 탄도 선착장이 새롭게 정비되면서 처음으로 가로등과 선착장이 정비되긴 했지만, 조금나루에서 하루 두차례 운항하는 배를 타고 들어어가야 한다.
마을회관은 섬 주민뿐 아니라 여행객에게도 문을 열어, 이곳에서 식수와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다른 섬은 물이 부족하지만 탄도는 가뭄이 와도 탄도의 지하수는 마르지 않을 정도이다.
주소 : 전남 무안군 망운면 탄도리
[후기로 보는 시간여행]
제주 올레길을 걷다 보면, 무덤을 자주 보게 되는 데 언제나 사각형 형태로 돌을 무덤 주위에 둘러싸고 있고, 중간에 구멍이 뚫려 있다.
이는 다른 곳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는데 영혼이 들락거려야 한다 해서 무덤을 두른 돌담에 구멍을 내어 놓기도 하고 들어오는 위치를 남녘으로 향하는 무덤이 대부분이다.
이곳 고분은 웅장한 높이와 넓은 둘레에 먼저 감탄사를 내고 숫자가 많은 고분에 당시의 군왕들의 위엄을 그려보게 된다. 어쩌면 고인과의 대화도 길을 걸으며 할 수 있을 듯 하다.
주소 : 전남 나주시 반남면 고분로 747
[후기로 보는 시간여행]
밀란 쿤데라가 그랬던가
모든 우연에는 주술적인 힘이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 걸어본 밤길 트래킹이지만
낯설지가 않고 졍겨움으로 다가온다.
베를린 기차역에서 안타깝게 헤어지며
아무 말 없이 10분도 넘게 포옹하면서
키스하고 눈물을 흘리던
그 연인들이 오늘은 생각이 난다
뱀장어 치어를 잡는 그들에게는 생의 전부이지만
내겐 봄밤을 밝히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오기에
그저 미안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