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소(방앗간)/창고 시간여행]
법고창신이라는 말은 옛 것을 새롭게 고친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옛 것을 오늘에 맞추어 새롭게 바꾼다는 말의 의미도 된다.
이말은 바로 전주시 외곽에 있는 색장정미소가 예쁘게 재탄생한 모습을 두고 말하는 듯 하다. 단지 아쉬움이 있다면 정미소의 자재 부족으로 주변 폐교의 창을 활용하여 겉모양이 변형된 형태가 되었다는 점이다.
정읍의 맛이라고 하는 쌍화차를 한잔 마시면서 잠시 옛스러움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주소 : 전북 전주시 완산구 원색장길 2-15
[항구/선착장]
현재 옹도는 태안 해안 국립공원 내에 있어 해양관광자원으로의 잠재적 부가 가치가 매우 높아 관할 관청인 대산 지방 해양수산청에서 친해양수산시설 문화공간을 조성, 일반 시민과 청소년들에게 건전한 여가선용 및 체험학습 공간 제공을 위한 선착장 등 부대시설을 정비하고 있는 중이다.
등대 입구는 환영의 게이트로 명명되었으며, 동백꽃이 필무렵에는 예쁜 꽃 터널이 생긴다. 북쪽으로는 철제로 난간을 만들어 관광 편의를 제공하였으며, 이곳 화단에는 등대 100주년 기념 표지석이 있다.
주소 : 충남 태안군 근흥면 가의도리
[한국의 역사 등대]
서해의 유인 등대섬인 옹도에는 충남의 대산항만청 소속 직원들인 등대지기 세 명이 살고 있으며, 소장과 두 명의 직원은 보름 간격으로 옹도와 육지를 오가면서 교대로 근무하는 등대이다.
코로나로 인하여 유람선이 뜨지 않아 지금은 낚시 유람선을 이용하여 입도하는데 그것도 거의 없는 실정인지라 입도가 참으로 어려운 섬이 되었다.
옹도는 등대를 제외하곤 살 만한 여건도 안 되는 그야말로 외딴고도라고 해야하는데 40년 전에 두 가구가 살았다는데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최초 점등일 : 1907년 1월 1일
주소 : 충남 태안군 근흥면 가의도리 산30
[유인도서]
옹도는 면적 0.17km, 섬둘레 0.4km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섬에 속하며 안흥항에서 약 12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충남 유일의 유인 등대가 있는 옹도는 항아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옹도라 부르는데 108년에 일반에 개방된 섬이기도 하다.
배를 타고서 바다에서 바라보면 옹도는 고래처럼 생겼서 고래등섬이라 부르기도 한다. 섬의 정상에 있는 등대의 모습은 고래가 숨을 쉬면서 뿜어내는 물줄기처럼 생겼다.
주소 : 충남 태안군 근흥면 가의도리 산30
[맛집]
함양에 가면 반드시 들려야 할 연잎 밥집이 있다. 바로 옥연가라는 이름을 지닌 한식 식당인데 가격대비 가성비가 높은 한정식 식당이다.
함양에서 키운 연잎을 가지고 밥을 만들어내어 자연식 음식을 내어 놓기에 한끼 식사로는 최고의 밥상이 될 것이다.
옥연가는 주변 식당에 비하여 가성비가 높고 만족함을 가질 수 있는 식당이라고 할 수 있다.
주소 : 경남 함양군 함양읍 상림3길 10
전화 : 055-963-0107
[광주 전남 두루워킹투어]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고,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목포의 눈물 가사이지만 목포는 눈물이 많은 도시가 아닌 서정이 많은 도시이다.
이난영의 목소리와 거기에 실린 목포의 눈물 노랫말 때문인지 목포는 항구 도시라면 으레 연상되는 다소 거친 분위기보다는 어딘가 애달픈 정서를 간직한 곳으로 인상지어져 있다.
목포는 항구이고 호남선의 종점이며, 도시로서 목포의 역사는 비교적 짧지만 1897년에 개항된 이래 일제 강점기를 통해 식민지 거점 도시로 이용되면서 급속히 성장, 오늘과 같은 틀을 이루었다.
[광주 전남 두루워킹투어]
과거에는 현 광주 광역시 보다 더 큰 도시였지만 지금은 밀려서 작은 도시가 되었지만 현재는 혁신 도시가 들어서서 도시 전체가 탈바꿈하고 있다.
동쪽으로 화순군과 경계하고 서쪽으로는 함평군, 강을 건너 무안군과 접하며, 남쪽으로는 영암군과 접하고 영산강이 있으며 북쪽으로 광주광역시와 접한다.
광주와 가까운 도시인 이유로 광주권에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광주의 위성도시로도 인식된다.
[전북 두루워킹투어]
신라 경덕왕의 전국 지명 한문화정책 때 추성군으로 개명했고, 고려시대에 지금까지 불리는 이름인 담양군으로 바뀌었다.
조선시대의 담양도호부와 창평현이 1914년 병합된 곳이다. 봉산면, 무정면 이북지역은 대체로 옛 담양도호부 영역이고, 창평면, 고서면, 대덕면, 가사문학면, 수북면 등 남부는 옛 창평현 지역에 해당한다.
백제 때 구 담양군 지역은 추자혜군, 구 창평군 지역은 굴지현이었으며, 율원현 및 창평현과 함께 무주(현 광주)에서 나주로 소속되었다. 무신 집권기에는 이연년 형제의 난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광주 전남 두루워킹투어]
권력에 대한 저항의 이미지를 강하게 가진 도시이며 진보적 인사들에게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민주주의, 정의를 위한 항쟁과 독재에 대한 저항에 가장 중요한 도시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광주의 이미지가 극대화된 곳이 바로 5.18 국립묘지이다. 광주광역시는 20세기 초까지는 나주보다도 작은 도시였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유명한 랜드마크는 없다.
광주는 예전에 많은 명소들이 있었으나, 개발 과정에서 거의 모든 것들이 사라져버렸다.
[간이역 문화재 시간여행]
폐역된 역은 안전 문제 관계로 대부분 선로와 전신주를 먼저 철거하고 이후 필요에 따라 역 건물을 철거하고 공터로 만든다.
이 경우 역터에는 플랫폼이나 나무 정도가 남을 뿐이고, 대부분 향나무나 측백나무 종류를 동호인들은 역목이라고 부르며 역의 터를 짐작케 하는 수단이 된다.
곡성역이 등록문화재가 되면서 창고 역시 철도 부지와 더불어 함께 등재되어 보존되고 있고 폐선된 지 거의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등록문화재이기에 활용되면서 우뚝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듯 하다.
주소 : 전남 곡성군 오곡면 기차마을로 232
[간이역 시간여행]
2001년 국가 등록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등록전 보수시 지붕 재료와 벽체 일부가 변형되었다. 내부에는 난방시설이 대합실과 사무실 사이에 위치하며 굴뚝이 지붕위에 조적되어 있다.
역사 및 주변 부지를 곡성군에서 매입하여 활용중에 있으며, 레일바이크 등 폐역된 간이역 중 가장 모범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주말이면 증기기관차가 용의 울음을 닮았다는 기적을 울리면서 왕복 운행되는데 이런 모습 때문에 드라마나 영화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주소 : 전남 곡성군 오곡면 기차마을로 232
[간이역 문화재 시간여행]
구 곡성역은 2동, 1층 규모로 역사로써 창고와 더불어 국가 등록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는 역사 중 하나이다.
구 곡성역은 전라선로의 역사로 1933년에 건립되었으며 등록된 간이역중 규모가 큰편에 속하며., 1933년 10월 15일 보통역으로 영업 개시하였다.
1999년 전라선 복선화로 곡성역이 신축이전하면서 폐역되었다. 지붕형태는 박공이 양쪽에 설치되었으며, 전면 방향은 입구에, 옆면은 사무실쪽에 배치되어 있다.
주소 : 전남 곡성군 오곡면 기차마을로 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