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 비경 두루워킹투어 ]
정읍 향교는 선조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고려와 조선 시대의 국립 지방 교육기관에 해당한다.
조선 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 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교육적 기능이 폐지된 향교이다.
정읍 향교는 정확한 설립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인조 16년에 이곳 유림이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세웠다는 설이 정설로 알려져 있으며,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늦가을에는 수령 340년이 넘은 은행 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주소 : 전북 정읍시 충정로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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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산외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랑은 해발5백미터가 넘는 상두산이 산외면 상두리 일대와 김제시 금산면 선동리에 걸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언제나 단풍으로 아름다운 명산 내장산이 있어 빛을 못보고 있는 산이긴 하지만 나름 계곡에 단풍이 들면 동초 김석곤의 암각화 글씨가 아름다운 전서체로 새겨져 있는 숨은 명산이기도 하다.
상두산의 지명은 석가가 고행 길에 6년 동안 설법을 했다는 인도 불교 성지에서 비롯되어서 일까? 송월주 스님의 탄생지가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동쪽으로 수많은 산봉우리가 보이며, 서쪽으로는 광활한 호남평야가 펼쳐져 날씨가 좋은 날에는 멀리 서해 바다가 보이기도 한 명산에 해당한다.
주소 : 전북 정읍시 산외면 상두리 산356-1
[정읍 비경 두루워킹투어 ]
색바람은 초가을에 부는 선선한 바람을 이르는 말인데 지금은 늦가을의 바람이 일어나는 가을과 겨울 사이의 또다른 계절이다.
색바람이 지나가는 자리에 불안하게 흔들리는 것이 없는 이유가 1년동안 쉼없이 움직인 모든 것들에 고요히 스며드는 바람이기 때문이다.
향기를 머금은 색바람은 모든 만물의 가슴에 햇살향기로 가득하게 하고, 풀과 나무와 곡식의 잎맥 속에 스며들기에 익어가는 것이고, 사람은 이 바람을 맞으면 향기를 머금기에 가을을 타는 것이다.
주소 : 전북 정읍시 신태인읍 신용리 1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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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거듭할수록 산야에서 자리잡아 전국 축제로 탈바꿈한 정읍 구절초 축제가 매년 한자리에서 예쁘게 피어나 많은 여행객을 불러 들이고 있다.
구절초 테마 공원에 만개한 구절초를 보기 위해 찾아온 시민들이 꽃 길을 따라 걸으며 가을을 만끽할 수 있지만 코로나 여파로 주춤했던 축제가 다시 열렸다.
구절초 가을 여행은 많은 시인들이 절창에 이르는 시를 발표하여 더욱 유명해졌고, 구절초 공원의 작은 모퉁이에서 솔향 머금은 아침 안개와 함께 가을 최고의 서정을 마음에 안기는 축제로 탈바꿈 하였다.
주소 : 정읍시 산내면 매죽리 571번지
[정읍 비경 두루워킹투어 ]
정읍시에 속한 마을 단위의 구석 구석을 다니는 버스 터미널은 첫차에서 막차까지 쉼없이 움직이는 살아 숨쉬는 지역의 보물에 속하는 소중한 곳이다.
시외로는 전주, 부안, 고창, 장성, 광주까지 왕복 운행하는 교통 중심의 요충지이며 정읍 마을의 구석 구석까지 다니기에 소읍 기행하기에는 참 좋은 터미널이다. 단지 아쉬운 것은 작은 터미널은 항상 보이던 간식 거리를 파는 작은 포차가 없고 슈퍼나 편의점이 대세인 점이라는 것이다.
인근 마을에 막차를 타고 다녀온 이들의 표정에서 우리는 터미널은 떠난 사람이 돌아오는 곳이라는 서정성을 되새길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주소 : 전북 정읍시 신태인읍 서태길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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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洑)라는 것은 논에 물을 대기 위하여 둑을 쌓고 냇물을 가두어 두는 곳을 말하는 넓은 평야에서 주농사였던 벼농사를 위한 수로 역할을 했다.본래 정읍천과 태인천 상류에 농민들이 설치한 보가 있었으나, 고종 30년(1893) 고부군수 조병갑이 농민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두 하천이 합류하는 하류지점에 새로 만석보를 축조하였다.
만석보가 완공된 후 가을에 새 보에 대한 수세라는 명목으로 많은 양의 쌀을 착취하자 농민들이 분개하여 1894년 전봉준을 중심으로 민란을 일으켜 동학농민운동의 발단이 되었다.
만석보는 농민들에 의하여 파괴되어 지금은 둑을 쌓았던 흔적만이 남아있으며 1973년 동학 농민 운동의 근원지인 이곳을 기념하기 위해 비를 세웠다.
주소 : 전북 정읍시 이평면 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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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철을 맞아 정읍 내장산 주변의 걷기 길 중에 용산호는 청정 자연과 도심이 공존하는 호수이며 용산호를 따라 소나무길, 대나무길, 수변 덱 등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산책 공간이 조성되었다.
용산호를 가로 지르는 미르샘 다리를 개통했으며 길이 642m, 폭 2m의 다리로, 다리 중심부에는 단풍·구절초·라벤더·용·샘 등 정읍을 상징하는 조형물과 18m 높이의 분수가 설치되었다.
밤이면 다리를 따라 야간 조명이 빛나 단풍철에 낭만을 즐길 수 있는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노을이 들 무렵은 용산호가 붉게 물드는 모습도 단풍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주소 : 전북 정읍시 첨단과학로 40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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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왕후 송씨(1440년 ~ 1521년 7월 17일 (음력 6월 4일))는 조선 단종 정비이며 시호는 단량제경 정순왕후(端良齊敬定順王后)이다. 여량부원군 송현수(礪良府院君 宋玹壽)의 딸로, 본관은 여산이다.
김종서의 사후 1454년에 간택령에 따라 왕비 교서를 받고 즉위하였으며 단종이 폐위되면서 군부인으로 격하 되었다가, 관비가 되었다.
이후 세조는 그를 노비이지만 아무도 범하지 못하도록 정업원(淨業院)으로 보내 생활하게 하였으며, 단종의 명복을 빌다가 사망하였고 그의 능의 소나무는 동쪽 방향으로 굽는다는 전설이 있다.
주소 : 전북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 5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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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드림랜드 조성 사업의 하나로 내장산 문화 광장 순환 열차는 열차 납품 지연으로 당초보다 운행 시기가 늦어졌지만 본격적인 시범 운행을 앞두고 모의 주행을 통해 안정화 중으로 알려졌다.
증기 기관차 머리 부분은 유럽형 관광 열차의 형태로 되어 있으며 화통에 해당하는 부분은 밧데리 2기가 장착되었으며 객실은 3량 중 2량이 연결되어 있다.
선로 변환기 중에 하나인 NS전환기가 선로에 설치되어 수동식 작동을 할 예정이지만 이 전환기의 단점은 승차감이 떨어지긴 해도 열차는 흔들려야 제 맛이기에 좋은 선택이다. 또한 오르막 구간을 지나 회전으로 돌아가는 구간은 한쪽으로 쏠리는 듯한 느낌으로 틸링식 구간도 형성하여 승차한 느낌을 줄 듯 하다.
단지 휴게 시설과 이정표나 열차의 캐릭터와 주변 환경이 아직은 미완공이라 아쉬운 점이 있다
주소 : 정읍 내장산 문화 광장 순환 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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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들과 함께 언제나 역사와 함께 흐르기 마련이지만 세대를 이끌어 갔던 이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역사 속으로 묻히기 일쑤이다.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 된 정읍 근대화의 기반을 마련한 입암면의 방직 공장들의 모습은 이제 전국에서 유일하게 만날 수 있는 장소가 정읍 외에는 없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낯선 현장이지만 이제는 박물관에서 조차도 만나기 힘든 근대화의 모습을 폭염이 내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정읍시의회 이도형 의원의 열정 어린 설명과 함께 사진에 남겼다.
주소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입암면 대흥리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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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시 입암면 대흥리에 엄청난 규모의 거주지와 수공업 단지가 성업할 수 있던 까닭은 민족 종교였던 보천교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본소가 대흥리에 있었기에 1920년대 전국 보천교인들이 모여들었고, 이들은 삶을 위하여 왜산 물산배척 운동을 벌였다.
일제 강점기에 보천교인들이 시작한 직물, 염색 공장은 오늘날까지 가내 수공업으로 기계화로 그 명맥을 이어 오고 있으니 살아 있는 정읍 근대화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은 중국산 등에 밀려 방직 산업이 사라지다시피 했지만 2개의 가내 수공업 형태의 공장과 3개 정도의 공장이 여전히 면방직 기계를 돌리고 있다.
주소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입암면 대흥리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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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태인면에 위치한 서현사지는 박문효의 사당이 있던 장소인데 한문을 보지 않고서는 절터로 생각할 수 있는 명칭이다.
박문효는 중종반정의 공신인 박원종의 후손으로서, 종묘 서직장이라는 관직에 있었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의주로 피신하자 임금을 따른 인물로 알려져 있다.
다음해 서울로 돌아오다 개성 싸움에서 26세의 젊은 나이로 순절한 후 그를 기리기 위해 사당을 건립하였지만 고종 5년에 철거되어 버린 사당이 되었다.
이후에 호남 유림들의 상소에 의해 순조 17년(1817)에 이조참의로 증직되면서 순조 19년(1819)에 처음 지어졌으나 고종 5년(1868) 철거되었다. 현재 서현사터에는 부인 송씨를 위해 세운 정려와 유허비가 남아있다.
주소 : 전북 정읍시 태인면 서재길 13 (태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