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긴 장마가 끝나고 노을이 내린다.
트래킹에 긴 장마를 뒤로하고 소강 상태에서
잠시 노을을 보며 나를 내려 놓는다.
정답이 없는 걷기에서 나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오로지 쉼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
어떤 결과가 노을과 함께 내리더라도
운명처럼 받아들일 걷기에서 한번 더 성숙한다.
[365]
가끔, 아주 가끔은
내 안의 나를 보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지만
때론 나를 돌아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내 안에 내재된 예술에 대한 욕망이 얼마나 강한지를
오늘은 출장길에 노을에 기대어 나를 본다.
또 다른 내 모습은 어떻게 보여질까?
부끄럽기도 때론 두렵기도 하지만
과감하게 나를 던져 본다.
[365일]
사라지는 것은 언젠가 누군가의 그리움이 된다.
지나간 시간은 언제나 가슴에 그리움이란 이름으로 남는다.
더 이상 비는 오지 않아 좀처럼 고정된 반영을
만나기 어렵겠지만 그리움으로 남을 것이다.
단지 그리움이 목적인 사람이 그리운 날,
그래도 바라볼 작품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가.
[365일]
와비 사비(侘しい) (寂しい) 라는 문화 운동이 있다.
단순하고 소박하고 오래된 것들이 새것이나 화려한 것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정신을 말한다.
우리는 최근 몇 년 들어서 이런 정신을 부각하고
주변 오래된 것들에 대한 관심으로 빈티지로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 요즘이다.
사진 소재 중 반영 역시 오래된 소재임에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소재는 아니다.
[365일]
8월이다.
이제 입추가 지나갔다. 사상 최대의 장마가 이어지고 바이러스로 생의 감각이 깨어져 버린 지금
비가 오면 비오는대로 살아야만 한다.
8이라는 숫자가 안정감이 더해지며 여기서도
비오는 날 설렘을 만났다. 항상 육체 언저리에서
힘듦을 주던 8월이지만 내게 반영으로 다가온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비는
모든 사람을 위해 건네준 한 장의 위로주 같은 것
[365일]
사람이 나이들어갈수록 익어가는 벼처럼 성숙으로
고개를 숙이는 것은 같은가 보다.
비가 온 후 낮은 자세로 허리를 숙이다 보면 보이지 않던 반영이 보이기 시작한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그런 날은
나를 낮추는 것부터 시작하나 보다.
[365일]
이문열의 소설을 읽어 보면
달이여 너는 내 사랑을 알고 있는가
무덤도 없이 떠난 그녀를
어느 하늘가를 떠도는지
헤어져 멀리 있더라도 언제까지나 잊지 않으리라
달빛 속에 사위어가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위의 시가 등장하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추억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지만 지날수록 사진 작품마냥
희미해지기만 한다.
[365일]
장마 비가 내린 탓에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눅눅하고 습기에 찬 바람이
얼굴에 스치는 시간이다.
한낮에는 뜨거워진 햇볕 탓에
인상이 찌그러지기도 하고,
어쩌면 지금 내가 사는 도시의 모습을 몸으로 체험하며 익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한용운님의 시가 생각난다.
담담하면서도 따스해 한참 동안 바라다보았습니다
라는 문장이 나를 지나간다
[365일]
비오는 날
보이는 것 모든 것이 서정이 되고 작품이 된다.
내리는 비에 나를 투영해 본다
나는 누굴까
이토록 내가 나에게 젖어 있는 날이다.
[365일]
붉게 물든다는 것은...
다함이 있다는 것일까
때론 완전체로 물든다는 것은 어쩌면 공포가 될 수도.
양면적인 이념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물이 들어야 한다면 그것도 완전체로 진하게
물들어야 한다.
그래야 모든 것에 다함이 있다.
[365일]
나를 바라다 본다는 것은
또 다른 나를 보는 것인데
거울은 모든 것을 그대로 투영하지만
내 그림자는 그림자가 나를 바라보기도 한다
나르시즘에 빠지지 않도록
또 다른 내가 되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건만 그림자는 오로지 한가지로
나에게 말을 건넨다.
그것도 검정색으로만...
[365일]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김수영 시인의 풀잎이다.
언젠부턴가 저항의 가장 낮은 계급이 풀잎이 되고
가장 생명력이 질긴 것이 되었다.
살아가면서 풀잎처럼 버터내야할 일이
얼마나 많을까.
이겨내고 나면 그 향과 색은 짙게 오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