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상처는 어차피 많은 시간이 흘러야 치유가 되기도 하고 오히려 더 깊은 아픔이 되기도 하는 것은 전쟁이며 그 세월을 살아왔던 이들에게는 그걸 떠안고 살아가게 되며 두 번 다시 그런 아픔을 겪지 않기 위한 명약이 되기도 한다.
가끔은 선명한 것보다 잘 보이지 않아서 더 가까이 갈려고 하거나 눈을 부릅 뜨고 보지만 잘 보이지 않고, 역사는 보려고 하면 더 숨어 버리는 경우가 많기에 흔히들 무관심으로 대체하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기억하고자 아니 잊지 않고자 오늘은 숨어버린 역사를 걸어보고자 고하도 갯가길을 걸었다.
주소 : 전남 목포시 달동
목포 고하도 갯가길을 묵묵히 걷다 보면 보이는 모든 것이 언제 이 땅에 침략과 전쟁이 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보이는 주변 풍경이 아름다움으로 다가올 때가 참 많다.
아마도 세월이 모든 것을 가려 주기에 그런 듯 하다.
한 낮에 보는 바다 풍경은 낚시하는 이들이 한가로움을 더해 주고 바삐 걷던 걸음을 천천히 걷게 한다.
예쁘다.
아침에 내린 안개마저도 가슴에 서정에 내려 앉으면
보이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예쁘게 다가온다.
내가 사라져도 바람은 영원히 살아 있고,
사라진 것들을 기억하듯 바람은 어디서든 불어와서일까?
그래서 바람이 참 좋다.
정적이 감도는 냉혹한 세한에도 추운 내색 않고 기세 당당,
거칠 것 없이 살아가고 있는 여름 풀이 예쁘기만 하다.
소나무를 베고 죄다 앙상한 알몸을 드러내고 있었던 나무들이
조금씩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이제 완연한 여름으로 움직이는 듯 하다.
때론 고정적이지 못하고 흔들려 보는 것은 어떨까?
무엇이 나를 미혹하던 간에 고지식함 보다는
잠시 흔들림을 생활의 활력을 줄건데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것은 시몬스 침대밖에 없는 듯 하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바람 탓에 여름이지만 아직 다가오지 않는 가을을 그려본다.
모든 지난 것에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했는데
이곳 고하도에서는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의 흔적을 보며 지난 것에는
그리움이 있다고 했지만 오로지 이곳은 아픔과 항일 의식이 먼저 가슴에 자리하는 것을 보면
지울 수 없는 아픔의 역사였음을 깨닫게 된다.
송나라 때 문인인 왕안석은
땅을 쓸고 꽃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건
그 꽃잎 먼지 묻을까 애처로워서라네
라는 절창의 한시를 썼는데 멀쩡한 사내들이 왜 봄날의 꽃 앞에서
앓는 소리를 해댈까? 봄이 짧은 탓일 것이겠지만
나름 지나온 세월 속에 몸에 베인 아픔이나 상처 때문이 아닐까?
걷기는 그 동안의 익숙했던 세계를 과감하게 떨치고 나서야
만날 수 있는 미지의 시간이면서,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어색함과 두려움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것은 어쩌면 우리 생애 중 앓아야 하는 하나의 계절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내 삶에서 가장 불꽃 같은 시간은 언제였을까?
혹 아직도 꽃피우지 못한 열정이
가슴속에서 식어가고 있지나 않은지 고하도 갯가길에서 고민해 보며
지금은 밋밋하게만 느껴지는 한 해를 입체적으로 살아
한 해가 지난 뒤에는 좀 더 깊은 향기를 지닌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역사를 지우는 건 내 마음속에 오롯이 남은 풍경 하나를 지워버리는 일이나
다름없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