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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윤 호주 등대를 만나다 1(Boyoun meets the Australian Lighthouse 1)

시드니 해안 갭팍 절벽길을 오르다 보면 유럽의 성을 만나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맥쿼리 등대를 보게 되는데 흡사 가덕도 등대를 만난 듯 하지만 입구 앞에 들어서면 그 보다도 더 크고 거대한 사원 앞에 선 듯하여 엄숙한 분위기에 매료된다.
우리나라 팔미도 보다도 무려 백년이 앞선 호주 최초의 등대를 만나는데 최초 점등일이 18세기이니 대항해시대 이후 호주 등대가 바다를 정복한 느낌마저 든다.
해안가의 절경을 보며 걷다 보면 세계대전 당시의 모습이 재현되어 있으며 곳곳에 옛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문화유산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글,사진 : 김보윤 작가
최초 점등일 : 1818년 12월
공식 점등일 : 1883년

South Head Upper Light라고도 알려진 맥쿼리 등대는 호주 최초의 등대이자 가장 오래 서빙된 장소이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울라라 지방정부 구역의 보클루즈 구 사우스 헤드로드 던바 헤드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등대는 시드니 항구 입구 근처에 사우스 헤드에서 남쪽으로 약 2km(1mi) 떨어진 곳에 있다.

이 근처에는 1791년부터 항행 보조 장치가, 1818년부터는 현재의 장소 근처에 등대가 있으며,

현재의 문화유산 등대는 1883년에 완공되었다.

이 등대와 관련 건물들은 James Barnet에 의해 설계되었고 1881년부터 1883년까지 지어졌으며 

이 등대는 지금까지도 작동하고 있으며 호주 해양 안전국의 관리하에 있다.

등대는 맥쿼리 대학의 문장에 그려져 있으니 흡사 우리나라의 역등에 새겨진 오얏꽃 문양등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만 

2008년 대학은 수련의 추상적이고 시대를 초월한 이미지로 묘사된 공식 로고를 

공개적인 시각적 정체성으로 도입했으며, 

그 후 무기 사용은 법적 문서와 같은 공식 문서로 제한되었다.

이 등대와 관련 유적지는 1999년 4월 2일 뉴사우스웨일스 주(州) 유산 등록부에,

 2004년 6월 22일 영연방 유산 목록에 추가되었다.

 

등대는 원래 신호의 수호자를 위한 두 개의 모서리 오두막과 함께  

네 개의 돌로 된 옹벽이 있는 복합적인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탑의 건설은 아마도 지금까지 식민지 내에서 수행된 가장 어려운 건설 중 하나였을 것이고, 

식민지는 양질의 건축 자재와 숙련된 노동력이 부족했고, 

그린웨이와 길의 기술에도 불구하고, 건축을 매우 어렵게 만들었으며 

1817년 12월경에 등대탑이 완성되었다.

등대는 1818년부터 영구적으로 운영되었고, 

제1함대의 전직 쿼터마스터이자 은퇴한 항만 책임자인 로버트 왓슨의 감독하에 있었다.

탑 건설의 단점은 일찌감치 드러났으며, 부드러운 사암은 수명이 짧았고, 1823년부터 무너지기 시작했고, 

구조물을 함께 유지하기 위해 큰 강철 띠가 배치되었다.

1822년에는 아치로부터 돌멩이가 떨어졌기 때문에 긴급 구조 수리에 들어갔으며, 

이 작업에는 지지 아치의 재건, 돌의 보강, 그리고 탑의 기단을 지탱하기 위한 큰 철제 후프의 도입이 포함되었다.

1830년에 추가 수리가 이루어졌고 건물의 서쪽 면에 베란다가 추가되었고,

1836년에 서남쪽 구석에 수장을 위한 새로운 숙소가 지어졌다.
 

1866년에는 탑 주위에 더 많은 철제 끈을 추가하는 등대의 추가적인 구조적인 수리에 들어가  

1883년에 공식적으로 점등되었다. 

1857년에 던바는 사우스 헤드에서, 캐서린 아담스는 노스 헤드에서 난파되는 사고가 생겼으며,

이러한 사고들은 항구로 들어가는 입구를 보다 명확하게 정의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던바호의 잔해는 맥쿼리 램프의 결함을 보여주었는데, 더 갭이 항구의 입구로 오인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