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을 때마다 오히려 더 강하게 꿈에 대한 열망이 식어가는 것은 아마도 나이 들어간다는 푸념 탓이 아닐까.
지나가는 시간을 아쉬워하던 푸르른 삶은 한구석 빛바랜 낙엽들 속에 웅크린 채로 햇빛을 그리워하며 한 겨울바람을 피하고 있는 허름하고도 가련한 삶들이 더 많이 눈에 띄어서 아파해야 할지 모르겠다.
겨울을 맞이 하는 초입에 11월도 하순으로 들어가고 있는 즈음에 지금의 시간은 미세한 자연의 귀 기울이는 천재 음악가처럼 내 안의 떨림을 찾아 내면으로의 여행을 떠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경북 울진 기성항 시화 골목을 걸으며
웃음은 위로 올라가 증발되는 성질을 가졌지만 슬픔은 밑으로 가라앉아 앙금으로 남으며,
그래서 기쁨보다 슬픔은 오래 오래 간직되는 성질을 가졌는데
사람들은 그것들을 상처라고 부른다고 공지영 작가는 말하고 있다.
그만큼 무게로 따지면 쌓이는 것이 증발보다 크다는 것이겠다.
바꿔 말하면 그리움도 가슴에 아주 많이 쌓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서 병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사랑하고 있다면 아무도 상대방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멈추게 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연인끼리는 서로 마주 보며 그것을 닦아내 줄 수는 있다고 하나 보다.
간호사 역시 피는 닦아줄지언정 눈물은 닦아 주지 않으니 말이다.
외로움과 고독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것은 기다림이고,
그 기다림의 대상은 사람이고, 사람보다 사람을 설레게 하는 것은 없다.
바다가 주는 느낌은 언제나 기다림의 장소이고 배웅의 장소이기에
시작과 끝이 아울러 나타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외수의 어디서 무엇이 다시 만나랴 라는 단편 소설처럼 주인공의 삶은 몸이 약해지자
마음도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말아서 자다가 문득 깨어나면 차 내던진 이불보다
슬픔이 먼저 수직으로 알싸하게 코끝으로 치솟기도 한다.
조만간 앙상한 가지만 드리우고 있던 겨울산의 나무들은 눈꽃을 소복이 피워내면서
쌓인 눈처럼 가슴속의 그리움을 채워줄 것이라 여겨집니다.
소녀가 서 있는 제주 대평항 방파제 빨간 등대와 병풍처럼 펼쳐진 기암절벽,
해가 뉘엿뉘엿 저무는 일몰시간이 되면 더욱 강하게 도드라지는 이 한 장면만으로도
나의 마음을 빼앗아갔던 대평리처럼 펼져진 마을처럼 드넓은 마을은 아니지만,
골목마다 바다가 있는 시와 주변 창문을 활용한 그림이 더욱 돋보이는 골목을 걸으며
느리게 흐르는 일상은 나의 시선을 받기에도 충분한 골목길이 되고 있다.
대문이 집 앞 담벼락에 서 있는 소녀 그림에 시선을 빼앗긴다.
그리고 골목 사이사이에 눈에 띄는 조형물들이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기성항의 골목을 가슴이 먼저 알아 본다.
몇달전 읽은 공지영의 해리는 내 인생에 겨울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얼마나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듯 했다.
이 계절에 삶을 돌아보면 설렘을 느끼게 하는 봄비와는 달리 겨울비는 마음을 움츠러들게 한다.
태양이 점점 멀어져 가는 찬기운으로 감정의 기온마저 떨어뜨리고
그래서 겨울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바다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비가 지나면 첫 눈이 곳곳에 내릴 것이고 거리에는 낙엽이 흩날리면서 수북이 쌓인 낙엽은
마치 지나간 시간들처럼 내 주변에도 지나간 시간이 쌓일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