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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도시 피렌체 그리고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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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칠보와 산외 사이에서(Between Chilbo in Jeongeup and the Sanowe)

트래킹을 하며 일상적인 생각과 걸음의 속도가 달라지는 게 여행의 목적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아침엔 먼 산엔 하얀 서리와 차가운 냉기가 일어나 겨울 아침을 제대로 보여 주는 날씨였다.

차가운 바람이 희미한 안개를 부르고 어쩐지 그것 역시 초겨울의 아침에 주는 계절의 메시지 같다. 추위에 몸을 움츠리며 서리를 찾아 걷는 나의 발걸음은 미세한 풀 잎을 조심스럽게 밟고 있다.

서리를 맞은 풀 잎을 카메라에 담는 지금 순간은 차가움도 잃고 세상 모든 시름을 망각하게 하는 순간인지라 그저 물아일체의 묘미를 맛보는 지금이 좋다.

주소 : 정읍 산외면과 칠보면의 경계에서

자신과 만나는 것, 흩뿌리는 안개비를 피해 마시는 커피의 맛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겨울 서리가 고마울 뿐이고, 서리가 내려 앉은 작은 풀잎마저 소중하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바람이 불고 안개가 몰려와도 

새로운 겨울 풍경에 감탄하며 충만해질 뿐이다. 

날마다 계절병에 그리움이 가득하니 백수가 과로사할 수 있다는 말은 

참으로 기가 막힌 절창이다.

겨울 아침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여러 대의 첼로가 동시에 연주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드는데, 
이른바 중음주법이 수시로 등장하면서 기가 막힌 화음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1번부터 6번까지의 모음곡 중에서도 특히 3번에서 그런 특징이 잘 드러나는데, 
프렐류드부터 현란한 더블 스토핑이 펼쳐지면서 나를 황홀하게 만들고,
모두가 잠든 새벽녘 오늘처럼 서리내리는 시간에 이런 곡을 들으면 더욱 좋겠다. 
바흐가 전해주는 더블 스토핑의 짜릿함에 빠져보고 싶은 그런 시간,
어쩌면 프라하를 그리게 되는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음악을 들으며, 
영화의 한 장면을 기억하고 떠올리는 이 시간은 그 어떤 시간보다도 행복하다.


설탕을 풀 잎에 뿌려 놓은 듯한 서리의 형상은 최대한 가까이 가야 볼 수 있기에 
차가움이 피부로 스며들지만 지금의 차가움을 즐기는 것이다.
한여름의 더위가 절정에 이르면 모든 꽃과 풀은 더위에 지쳐 수그러지지만, 
아직 시들지 않은 가을꽃은 노란 꽃잎을 수그리며 서리의 차가움을 이기지 못해
고개를 숙이는 듯 하지만 빛깔만큼은 오히려 더욱 빛나는,
아니 더 밝게 피어나는 그런 의지를 지닌 듯 해서 더욱 좋다. 
해가 지면 여행객을 지켜주는 거리의 환한 불빛은 
꽃처럼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는 밤의 꽃이라면 
서리는 겨울 아침을 서정적으로 만들어 주는 아침꽃이다.
한 권의 책이 사람의 인생을 바꾸고, 
서로 다른 세계를 책을 통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도 
독서 자체가 좋은 것처럼 서리를 바라보는 지금의 내 모습은
독서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