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비오는 도시 피렌체 그리고 뜰

닫기
HOME > 바람따라 걷는 시간여행 > 전북 스템프투어

내가 사랑한 목포를 걷다 3(Walk on the Mokpo I loved three)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고,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아마도 목포하면 아는 사람은 가보지 않아도 이 노래부터 흥얼거릴 것이다.

갸냘픈 전통 트롯인 이난영의 목소리에 실린 가사때문인지 더욱 서정적인 맛을 먼저 떠올리는 반면에 주먹 세계가 으레 연상되는 것은 아마도 항구 도시가 가지는 특성이 아닐까.

무안반도 끝자락에 위치하여 유달산에 오르면 무안반도에 둘러쌓인 바다가 모두 보이고 도시를 보다 보면 포근한 생각마저 드는 곳이 목포다. 1897년에 개항된 이래 일제 강점기를 통해 식민지 거점 도시로 이용되면서 급속히 성장, 오늘과 같은 틀을 이루었다.


​조선 광무4년(1900)에 건립되어 1907년까지 일본 영사관으로 사용되었다가

이후 1914년부터 목포부청사, 1974년부터 목포시립도서관, 1990년부터 2009년까지 목포 문화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해안에서 1㎞ 가량 떨어진 유달산 기슭에 위치하며,

붉은 벽돌을 이용한 2층의 르네상스 양식 건물이다.

건물 평면은 장방형으로 중앙 바깥쪽으로 현관을 두었고, 내부 바닥을 나무로 구성하였으며,

우진각 지붕으로 이루어졌다. 대리석으로 치장한 벽난로와 당시 사용하던 거울 등이 원형 그대로 잘 남아있다.
 일제 침략의 현장으로서 역사적 교훈을 주는 교육의 장으로 보존가치가 있으며

현재 사적 제289호로 지정되었다.


1925년 건립된 이 건물은 일제 강점기 목포 청년들의 항일 운동 근거지였으며,

조선청년이란 잡지를 발행한 역사적인 장소이다.

회관 건립을 위한 모금 운동으로 각계각층의 기금을 모아 건립된 것이기에

특별한 디자인 요소 없이 각 부분이 기능적으로 처리되었다.

일제 강점기 목포 청년들이 펼쳤던 민족 운동의 산실이며,

우리 민족 스스로의 자주성으로 건립·운영된 건물로 목포 청년 운동의 중심 역할을 했던 곳이며

등록문화재 제 43호로 지정되었다. 


1929년 건립된 이 건물은 일본인 자녀 교육을 위해 목포에 처음으로 설립한 심상소학교의 강당이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에 앞쪽과 양쪽 면은 두 가지 색깔의 타일로 마감하였으며,

2층에는 폭이 좁은 아치창을 두었다.

목포에 남아 있는 유일한 일제 강점기의 초등학교 건물로 당시 강당 건축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등록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되었다.




이 건물은 미국 남장로교의 선교사 유진벨(Rev. Eugene Bell, 한국어 이름: 배유지)이 목포 지역 최초의 교회로 설립하였던 양동교회의 본당이다.

양동교회는 1897년 선교사들과 신도들이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린 것이 시초가 되어,

교인들의 노력으로 건립되었다.

교인들이 유달산에서 직접 날라 온 석재를 주재료로 축조하였으며,

특이하게 왼쪽 출입문 위쪽에 태극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등록문화재 제114호로 지정되었다.




1954년 건립된 이 건물은 목포사범학교 본관으로 건립되어, 지금은 목포대학교 경영행정대학원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전면 중앙에는 박공지붕과 함께 육중한 캐노피를 설치하여 진입 현관으로서의 정면성을 강조하였고,

뒤쪽 출입구에 설치된 캐노피를 지지하는 기둥은 아래쪽을 위쪽보다 크게 하여

역동적으로 처리하는 등 디자인이 돋보이며 등록문화재 제239로 지정되었다.




입구정원에는 향나무·종려나무·얼룩식나무·다매화·은테사철나무·모과나무·배롱나무·사스끼철쭉 등을 심고,

안뜰정원에는 잔디로 마당을 만들어 후박나무와 후파향나무·종가시나무 등을 심어놓았다.

임천정원에는 히말라야시이다·주목·삼나무·편백나무·종가시·위성류·다매화 등을 빈틈없이 심었는데,

수풀 속으로 좁다란 시냇물이 흐른다.

후원은 언덕 위의 평편한 잔디마당을 중심으로 그 위쪽과 아래쪽에 갖가지 나무들을 심어 놓았으며

전남 문화재 자료 제165호로 지정되었다.




일제시대 조선 농민의 수탈기관이었던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목포지점 건물이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1908년 일제가 한국의 경제를 독점, 착취하기 위해 한국내에 설립한 회사로, 목포시에는 중앙동에 자리하고 있다.
 사리원지점과 함께 가장 중요했던 지점으로, 현재 남한 지역에서는 부산과 목포밖에 건물이 남아있지 않다.

규모에서도 부산지점보다 크며, 당시의 공공시설물로는 이 지역에 유일하게 남아있다.
 1920년 경에 세운 것으로, 일제시대의 대표적 수탈기관으로서의 아픈 역사성과 시대성을 지닌 건물이다.

전남 기념물 제174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