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등대문화유산]
코로나 기간을 거치면서 관람 절차가 까다로운 등대가 되어버린 가덕도 등대는 역사 등대의 하나로써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면서 건립되었다.
옛 가덕도 등대 건물은 서구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의 하나로 해수부에서도 영구 보존 시설로 지정해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가덕도를 방문시에는 5일전에 미리 출입 신청 후에 인가가 나오면 본인 확인 절차를 거쳐 들어갈 수 있는데 방문시에 김홍수 팀장의 친절한 안내로 모두 돌아 볼 수 있었다.
최초 점등일 : 1909년 12월 01 제 8 호
주소 : 부산 강서구 외양포로 10
[해변/해수욕장]
국내 해수욕장 중에 가장 고운 모래는 주로 신안에 분포 되어 있음을 현지에 가서 알게 되는데 간조에 모래가 드러나게 되면 맨발로 걸어도 그 느낌이나 감촉이 고운 모레 사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신안 임자도 대광 해수욕장의 모래는 입자가 고와서 유리 재료로 쓰는 규사의 원료가 될 정도이며 광활한 모래 사장을 맨발로 걸어도 상처를 입지 않을 정도의 모래 사장이다.
간조에 바닷물이 빠져 나가고 햇빛에 증발하면서 물길의 흔적이 그림으로 나타나는 순간은 자연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이 시각적 즐거움을 주고 이를 보며 미술관의 작품을 보듯 감상하게 된다.
주소 : 전남 신안군 임자면 대광리
[항구/선착장]
선도는 신안군 지도읍에 속한 섬으로써 선흘리항에서 작은 어선으로 뱃길따라 30분 정도를 가면 만나는 작은 섬이다.
섬의 생김새가 매미같이 생겼다 하여 맵재, 선치도, 선도라 하였다고 전해 오고 있으며, 해안은 사질해안이 많으며, 섬 주위에는 간석지가 넓게 발달되어 있어 만입부를 방조제로 막아 농경지와 염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봄이면 이주민이 심어둔 수선화가 온 섬에 가득 피어나 입도하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며,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여 가꾸어둔 수선화가 가득 피어난다.
주소 : 전남 신안군 지도읍 선도
[유인도서]
여자도와 나무데크로 이어져서 지금은 건너다닐 수 있는 섬으며, 소여자도라고도 불린다. 송여자도는 작은 여자도란 뜻으로 본래 이름은 솔넘자였다.
여기서 솔은 작다라는 의미로 작은 여자도라는 뜻이다. 혹은 소나무가 많은 섬으로 섬에 거송(巨松)이 있었기에 송여자도’라고 불렸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으며 작은 선착장 양쪽으로는 가로등이 양쪽으로 등대 역할을 하고 있다.
선착장은 여자도와는 거리가 제법 있어 하루 두 차례 송여자도에서 육지로 나가야 하며 작은 배 한 척이 육지를 오가며 섬 주민들의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주소 : 전남 여수시 소라면 송여자도
[항구/선착장]
여자도와 나무데크로 이어져서 지금은 건너다닐 수 있는 섬으며, 소여자도라고도 불린다. 송여자도는 작은 여자도란 뜻으로 본래 이름은 솔넘자였다.
여기서 솔은 작다라는 의미로 작은 여자도라는 뜻이다. 혹은 소나무가 많은 섬으로 섬에 거송(巨松)이 있었기에 송여자도’라고 불렸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으며 작은 선착장 양쪽으로는 가로등이 양쪽으로 등대 역할을 하고 있다.
선착장은 여자도와는 거리가 제법 있어 하루 두 차례 송여자도에서 육지로 나가야 하며 작은 배 한 척이 육지를 오가며 섬 주민들의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주소 : 전남 여수시 소라면 송여자도
[간이역 시간여행]
문화재 발굴 유물 역사 문화 공간으로 폐터널인 예담고가 새롭게 탄생하면서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폐터널의 활용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발굴 조사 중 출토된 유물을 체계적으로 보관하고, 이를 활용한 전시·교육·체험 등을 운영하기 위해 조성한 예담고의 운영을 충청권(대전 사진포 터널)에 이어 호남권에서도 운영을 시작했다.
호남권 예담고는 일반인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발굴 문화를 널리 알리는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여 미래 문화재 수장과 발굴을 직접 체험해 보는 공간으로 탈바꿈 하고 있으며, 예담고는 옛 것을 담은 공간, 옛 것에 현재를 담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주소 : 전북 완주군 상관면 신리
[간이역 문화재 시간여행]
정읍 입암에 있는 호남선 터널에 놓여 있던 철로와 침목은 오래전에 이미 모두 철거되었고, 레일이 놓였던 곳은 도로와 길로 바뀌었지만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다.
교각은 위로는 기차가 지나 갔고 교각 아래에는 일반 교각이 아닌 냇물이 흘러 내리는 교각을 터널로 형성한 점이 다른 터널과 상이한 점으로 보인다.
일제 강점기에 건설될 당시 돌을 쌓은 후 일제 강점기 양식인 아까랜까(붉은 벽돌)를 사용하였으며 내부에는 50미터 마다 대피소 형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는 등록 문화재급 터널이다.
일제 강점기의 시대상과 건설 공법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으며 터널 입구는 웅장한 돌로 만든 형태이기에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공간을 보여준다.
주소 : 호남선 입암면 옛 철길 부지와 폐 터널
[간이역 문화재 시간여행]
한벽 터널은 전라선 본선의 일부로 일제 강점기에 전주~남원간 철도를 건설하면서 시공 후 1931년 개통되어 지금은 복선화 공사로 폐쇄 된 터널이다.
당시 일제는 조선인들이 신봉하던 풍수지리 사상을이용하여 한벽당의 풍광과 정기를 끊기 위해 바로 밑에 터널을 뚫고 전라선 철도를 건설했었다.
이후 일제가 패망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에도 이 굴은 전라선 전주시 도심 구간의 일부로서 철도 터널로 계속 사용되었으며, 근래에 와서는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인기를 모으는 터널이 되었다.
주소 : 전북 전주시 완산구 기린대로 2
[포항 지방 해양수산청]
감포항 북방파제 등대는 경주 항구 중에 가장 큰 어항인 감포항의 방파제 끝 단에 설치되어 있는 등대로 신라시대 호국 사찰인 감은사지의 삼층석탑을 형상화한 등대와 마주 보고 있는 등대이다.
등대는 내측 안 쪽으로 위치하고 있으며 야간에는 경관 조명이 등탑을 비추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등대 중에 하나이다.
특히 에밀레 종을 형상화한 등대와 마주 보고 있어 항구 안쪽으로 입출항하는 선박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으며 항구 안쪽 수심이 낮은 쪽과 암초로부터 선박을 유도하고 있는 등대이다.
최초 점등일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감포읍 감포리 504-50
[포항 지방 해양수산청]
경주 척사항 방파제에는 유명한 성덕대왕의 신종 에밀레 종 모양을 한 방파제 등대가 있는데 등대 안에 들어 있는 종에는 유명한 문양까지 새겨져 있어 설치시 많은 노력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의 흔적에 보답하는 양 등대 매니아 사이들에선 입소문으로 퍼져 경주를 가게 되면 반드시 들리는 항구로 자리 잡으면서 더욱 알려지게 되었고 얼마전 리모델링 하여 재탄생하였다.
항구를 드나드는 어선의 보호를 위해 세워진 등대이긴 하지만 나아가서는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등대가 지켜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최초 점등일 :
주소 : 경북 경주시 감포읍 척사길
[포항 지방 해양수산청]
경주 송대말 등대를 가게 되면 등대 리모델링으로 내부를 볼 수 없지만 완공 이후로는 전시관이 들어서 등대를 찾는 분들에게 볼거리를 줄 듯 하다.
기와로 된 등대를 보고 바다쪽으로 내려가면 나무 데크와 함께 홀로 바람과 싸우며 바다를 지키는 등대를 하나 더 만나게 된다.
이 등대는 바다에 직접 빛을 보내 육지임을 알리고 항해하는 선박에게 희망을 빛을 주는 등대로 홀로 서 있지만 큰 힘을 느낄 수 있는 등대이며 실내는 일반인에게 공개하면서 전시실로 탈바꿈하였다.
최초 점등일 : 1955년 6월 30일
주소 : 경북 경주시 감포읍 척사길
[마을/학교(폐교) 시간여행]
감포 해국길은 감포항 어귀 마을에 조성된 골목 벽화 거리가 조성되어 이곳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은 시작길부터 적산 가옥이 보여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골목길임을 보여주고 있다.
골목 벽화에는 시대적 스토리와 젊은 감각의 디자인 조형물을 설치하여 남녀노소가 모두 즐길 수 있는 스토리 골목길이 되었으며 감포 깍지길이라는 이름을 명명 하였다.
연보랏빛 해국을 마을 골목 곳곳의 벽에 그려놓았으며 계단 전체에 해국을 그려 놓은 스팟은 놓치지 말아야 할 포토존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교회 옆에는 일제강점기 신사가 지금도 남아 있어 시대적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골목이 되었다.
주소 : 경북 경주시 감포읍 감포로 119-6